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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열전

세 번이나 주군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남자, 그는 왜 끝까지 손씨를 지켰을까?

by 삼국지사가 2026. 9. 13.

삼국지에는 수많은 충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 명의 주군을 끝까지 섬긴 것과, 주군이 죽은 뒤에도 그 가문을 계속 지킨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주군이 죽으면 세력도 흔들린다.

새로운 후계자가 등장하면 충성의 대상도 달라진다.

특히 난세에서는 어제까지 같은 편이었던 장수가 오늘은 다른 주군을 섬기는 일도 흔했다.

그런 시대에 이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한 가문에 남았다.

처음 그가 따랐던 사람은 강동의 패자가 아니었다.

아직 손씨 가문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도 전이었다.

그는 한 젊은 장군을 따라 전장을 누볐고,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몸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죽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을 따라갔다.

그 아들은 강동을 휩쓸며 손씨 가문의 기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젊은 군주마저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번에는 그의 동생을 섬겼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은 손견 → 손책 → 손권이라는 세 세대와 겹쳐졌다.

그런데 이 남자의 삶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평생 전장을 누빈 자신보다 훨씬 젊은 장수가 군권의 중심에 등장했을 때, 그는 처음부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이도 자신보다 어렸다.

경력도 자신보다 짧았다.

원로 장수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젊은 장수를 여러 차례 업신여겼다.

하지만 그 젊은 장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 젊은 장수를 진심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함께 조조의 대군과 맞서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은 훗날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가운데 하나가 된다.

적벽대전.

하지만 적벽대전만 보면 이 남자의 인생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

진짜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세 번이나 주군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남자, 그는 왜 끝까지 손씨를 지켰을까?
세 번이나 주군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남자, 그는 왜 끝까지 손씨를 지켰을까?

손견의 시대부터 시작된 인연,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젊은 주군을 구한 순간

이 남자는 처음부터 거대한 세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주와 군의 관리로 일했고, 외모와 언변, 계략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전장에 뛰어든 것은 손견을 따르면서부터였다.

후한 말은 말 그대로 혼란의 시대였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각지에서는 군벌들이 등장했다.

중앙의 권위는 흔들렸고 지방에서는 수많은 군사 세력이 충돌했다.

손견 역시 그 혼란 속에서 이름을 알린 무장이었다.

이 남자는 손견을 따라 황건적을 토벌했고, 이후 동탁과의 전쟁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정사에는 그가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우면서 몸에 상처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짧은 문장은 의외로 중요하다.

그는 단순히 후방에서 명령만 내리던 장수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직접 전장에 들어갔고, 실제로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싸웠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손견과 함께한 세월은 그에게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손견의 죽음은 그에게 첫 번째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군이 사라진 것이다.

많은 장수라면 이때 새로운 길을 찾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손씨 가문을 떠나지 않았다.

손견의 아들 손책을 따라갔다.

손책은 아버지가 남긴 기반을 바탕으로 다시 세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손책과 함께 강동으로 향했다.

손책이 강동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공을 세웠다.

여러 지역을 공격하고 적을 격파하면서 그의 공적은 계속 쌓였다.

특히 손책이 회계로 진출한 뒤에는 오군도위와 단양도위 등을 맡는 등 단순한 전투 지휘관을 넘어 중요한 지역의 군사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손책과 관련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남아 있다.

손책이 조랑을 공격했을 때였다.

전투 중 손책의 군대가 크게 위험에 빠졌다.

손책은 적에게 포위당했다.

바로 그때 이 남자가 나섰다.

그는 기병 한 명과 함께 손책을 가로막아 보호했고, 말을 몰아 적진으로 돌진하며 창으로 적을 찔러 길을 만들었다.

적의 진형이 무너지자 손책이 그 틈을 타 빠져나왔다.

이 장면은 짧지만 이 남자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손책의 부하였던 것이 아니다.

주군이 위험에 빠지자 자신의 목숨을 계산하지 않고 바로 뛰어들었다.

평생 전장을 누빈 노장에게는 수많은 전투가 있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목숨보다 손책의 생존이 중요했다.

그리고 손책은 살아남았다.

이후 손책은 강동을 계속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이 남자의 공적도 계속 쌓였다.

그러나 난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적군만이 아니었다.

주군의 죽음이었다.

손책은 200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강동을 빠르게 장악했던 젊은 군주의 죽음은 손씨 세력 전체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 남자는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손책의 동생 손권을 보좌했다.

그렇게 그는 손견을 따라 전장에 나갔던 장수에서 손책을 지키는 원로가 되었고, 다시 손권을 보좌하는 핵심 장수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느 순간부터 손씨 가문의 역사와 완전히 겹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앞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젊은 장수가 군권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장수를 업신여겼던 노장, 그런데 결국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

손권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 남자의 위치는 더욱 특별해졌다.

그는 이미 손씨 가문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장수 중 한 명이었다.

손견과 함께 싸웠고, 손책의 강동 정복에도 참여했다.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고, 직접 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살아남았다.

그러니 자신보다 어린 장수가 갑자기 군사의 중심에 서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 젊은 장수의 이름은 주유였다.

주유는 손책과 동년배에 가까운 젊은 장수였지만, 군사적인 재능과 판단력으로 빠르게 손권의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남자와 주유는 함께 군사를 이끌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정사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이 남자는 주유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이유로 주유를 여러 차례 업신여겼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단순한 세대 갈등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군대에서는 나이와 경력, 공적과 서열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평생 전장을 누빈 원로에게 갑자기 젊은 장수가 상관처럼 행동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유의 대응이 특이했다.

주유는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보다는 상대를 받아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참음이 아니었다.

주유에게는 자신이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원로 장수였던 이 남자가 오히려 주유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후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주유와 가까워진 뒤, 주유와 교제하는 것을 진한 술에 취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어린 장수를 무시했지만, 그 사람의 그릇을 직접 경험한 뒤에는 오히려 깊이 존경하게 된 것이다.

이 일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손견 시대부터 살아온 노장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장수가 있었다.

한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새로운 시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국 서로를 인정하면서 오나라의 군사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 관계가 결정적으로 시험받은 사건이 바로 조조의 남하였다.

208년 조조는 형주를 장악하고 강동을 향해 내려왔다.

조조의 세력은 거대했다.

북쪽을 장악한 조조가 형주의 수군까지 확보하면서 손권 측에서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때 손권의 군사적 선택을 이끈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유였다.

그리고 이 남자도 주유와 함께 조조를 맞이했다.

정사에는 주유와 이 남자가 좌우도독이 되어 각각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유비와 함께 조조군을 막았으며, 적벽에서 조조군과 맞붙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는 단순히 적벽에 이름만 올린 장수가 아니다.

주유와 함께 오나라의 핵심 지휘관으로 적벽 전투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그 결과 조조군은 패배했다.

그리고 전쟁은 남군으로 이어졌다.

주유와 이 남자는 조조군을 추격했고, 조인과 맞서 싸웠다.

적벽에서 시작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릉과 남군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주유는 크게 부상을 입었다.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오른쪽 갈비뼈 부근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조인에게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군영을 돌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결국 조조군은 물러났다.

주유는 남군태수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 남자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주유와 연결된다.

주유는 오래 살지 못했다.

적벽에서 승리하고 남군을 차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을 얻었다.

그리고 210년, 불과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손권에게는 엄청난 손실이었다.

그리고 주유가 죽은 뒤 남군을 대신 맡은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다.

한때 자신보다 어린 주유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원로가 결국 그의 뒤를 이어 그가 맡았던 지역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묘한 장면이다.

처음에는 나이와 경력 때문에 주유를 무시했다.

하지만 결국 주유의 그릇을 인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가 남긴 자리를 이어받았다.

세 번이나 주군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남자, 그는 왜 끝까지 손씨를 지켰을까?
세 번이나 주군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남자, 그는 왜 끝까지 손씨를 지켰을까?

세 주군을 지킨 노장의 마지막, 그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했다

이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화려한 전투가 아니다.

사실 그의 진짜 이야기는 누구의 곁에 남았는가에 있다.

손견이 죽었을 때도 남았다.

손책이 죽었을 때도 남았다.

손권이 즉위했을 때도 그 곁에 있었다.

그리고 적벽에서 주유와 함께 싸웠다.

한 사람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같은 가문의 역사를 함께했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손견 시대의 그는 젊은 장수였다.

전장에서 직접 싸우며 상처를 입었다.

손책 시대에는 손씨 가문의 강동 정복을 함께한 핵심 장수가 되었다.

그리고 손권 시대에는 가장 연륜이 깊은 원로가 되었다.

정사에서는 당시 장수들 가운데 그가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정공(程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존칭이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오래 전장을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별명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성격이다.

전장에서는 강인한 장수였지만, 평소에는 베풀기를 좋아하고 사대부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삼국지 장수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삼국지에서 장수라고 하면 대개 술을 마시고 싸우고, 적장의 목을 베는 모습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남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능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단순히 창을 잘 휘둘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을 알았고, 새로운 세대와 관계를 맺는 법도 배웠다.

주유와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어린 장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이것은 어쩌면 평생 전장을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에 얻은 가장 큰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경력이 많다는 것과 언제나 옳다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전투와 같은 사건이 찾아왔다.

주유가 죽은 뒤 그는 남군을 대신 맡았다.

이후 손권이 형주의 영토를 유비와 나누면서 그는 다시 강하를 맡았고, 탕구장군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그의 최후는 놀라울 만큼 갑작스럽다.

오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 수백 명을 처형했고, 그들을 불에 던져 죽게 했는데, 바로 그날 전염성 질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백여 일이 지나자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나 허무하다.

황건적과 싸웠다.

동탁과 싸웠다.

손견을 따라 수많은 전장을 돌았다.

손책이 포위당했을 때는 목숨을 걸고 구했다.

손책이 죽었을 때도 남았다.

손권을 보좌했다.

적벽에서는 조조의 대군과 싸웠다.

남군에서는 조인과 맞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병으로 쓰러졌다.

그가 죽었을 때는 손권이 아직 황제가 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훗날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그의 공적을 다시 논의해 아들 정보에게 정후의 작위를 내려주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손씨 가문은 그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남자의 삶은 이상할 정도로 손씨 가문의 역사와 닮아 있다.

손견이 등장하면서 시작했고,

손책이 강동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맞았으며,

손권이 그 기반을 이어받으면서 하나의 국가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하를 혼자 뒤집은 영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시대가 끝날 때마다 그 자리에 남아 다음 시대를 이어준 사람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의 이름이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것인지 모른다.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적을 쓰러뜨리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것을 해냈다.

손견이 죽어도 남았다.

손책이 죽어도 남았다.

주유가 죽어도 그가 남긴 자리까지 이어받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씨 가문과 함께했다.

그의 인생은 한 번의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충성과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름|정보(程普)
자|덕모(德謀)
출생|연도 미상
사망|210년
출신|우북평군 토은현
소속|손견 → 손책 → 손권
주요 직책|오군도위·단양도위·탕구중랑장·강하태수·탕구장군

“그는 한 번의 전투로 영웅이 된 사람이 아니라, 손견에서 손권까지 세 시대를 살아남아 오나라의 역사를 직접 이어준 남자였다.”

만약 정보가 손책 사후 손권을 보좌하지 않고 손씨 가문을 떠났다면, 손권은 훗날 적벽에서 조조와 맞설 만큼 강한 세력을 만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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